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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스토리

바리새파에 속한 바리새인이 궁금하다

by khuiharley 2022. 12. 2.

성경은 바리새파에 속한 바리새인을 주의하라고 하며,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이유와 배경을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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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나님의 계시가 끊어진 암흑시대라고도 불리는 신약 중간 시대의 역사는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 페르시아, 그리스(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나누어진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 수리아(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마카비 전쟁, 하스몬 가문의 등장을 통해 유대 사회는 수없이 변화하는 권력의 흐름을 따라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아 선택되었던 대제사장이 아닌, 정치 권력자들에 의해 세워진 꼭두각시 대제사장들이 임명되던 시대였다. 

바리새인은 유대교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지키려고 헌신했던 유대교의 4대 종파 중에 하나로서, 회당에서 활동하던 율법 주의자, 대대로 물려받아 내려온 장로들의 전통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자이며 보수주의자들이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큰 신망과 존경을 받는 당대 유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던 당파였다. 

바리새파에 속했었던 요세푸스 역사학자는 바리새파에 대해 말하기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기들을 율법 해석하는 데에 있어, 가장 권위 있는 사람들로 여겼으며, 자신들이 지도적인( 어떤 목적이나 방향으로 남을 가르쳐 이끌만한) 종파라고 여겼다. 

바리새파는 헬라어로 " 파라사이오스 " 분리된 자, 구별된, 타협하지 않는 배타적인 신앙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 페루쉼 "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이들은 " 토라 "라고 불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서 율법을 능숙하게 다루는 유대의 율법 선생이었으며, 구약 성경에서 부정한 것이라고 말하는 음식과,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모든 이방인들을 부정 한자로 여겨, 그들을 지옥의 땔감으로 여기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이들은 세상의 모든 부정한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신앙을 지켰던 자들이었다.  |


 바리새인들의 역사적 뿌리는?


바리새인들의 역사적 뿌리로는 주전 B.C 2세기 (그리스도 이전 Before Christ) 마카비 혁명 기간 동안 수리아(시리아)의 왕이었던 안티오코스 4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을 제우스의 화신으로 믿게 하는 등,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헬라 종교를 믿도록 법령을 따르라는 정책을 내세우게 된다. 

또한 이것과 더불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정한 동물은 먹어서도 안되며, 심지어 죽은 동물의 시체 조차도 만져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데, 이렇게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를 성전 제단에서 제우스를 위한 제사를 드리는 데 사용함으로 인해, 참된 거룩한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유대인들이 일어난 사건이 마카비 혁명이었다. 

이렇게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선택받은 선민으로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보수적이며,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경건한 유대인들의 집단인 하시딤 Hassidim으로부터 시작된 모임으로부터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 


사실 유대교 종파들의 기원이 마카비 혁명으로 인해 세워진 하스몬 왕조가 등장함에 따른 하시딤의 반응과 움직임에 따라 유대교 종파들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하스몬 왕조가 드러 서면서 변질되어가는 유대 종교에 환멸을 느껴 광야로 나가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경건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하시딤이었다. 

그중에서 주전 142년에 마카비 가문의 요한 힐카누스 1세 왕은 왕직과 대제사장직을 겸직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때 이것을 찬성하며 하스몬 가문의 권력에 연합하는 무리가 있었는데, 이 무리를 의로운 자들이라는 뜻을 가진 사두개파가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스몬 왕이 대제사장 직분을 겸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바로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바리새파가 되었고, 이들은 하스몬 왕조의 정치권력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리고 변질되어버린 유대 종교에서 나와 광야에서 신앙을 지키던 본래 경건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하시딤을 그리스어로 " 에세노이 "라고 번역을 해서 요세푸스 기록에서는 " 에세네 "라는 명칭이 바로 요세푸스에 의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요한 힐카누스 1세는 자신의 아들들인 유다를 아리스토불루스, 맛다디아 = 맛타티아스를 안티고누스, 요나단을 알렉산더 얀네우스로 바꾸어 그리스 헬라식으로 불렀다. 

요한 힐카누스 1세는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이 왕직과 제사장직을 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부인에게는 왕권을 주고, 아들 아리스토불루스에게는 제사장직을 주게 된다.

이렇게 요한 힐카누스 1세가 자신의 아내가 왕위를 이어가도록 위임했지만, 그의 아들이었던 아리스토불루스(유다)는 부친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감옥에 가두고, 어머니는 굶주려 죽게 한다. 

아리스토불루스 1세가 재위한후에 갈릴리를 정복했지만, 재위한 지 1년 만에 사망하게 되는데, 그의 왕권을 아들이 아닌, 아내였던 살로메 알렉산드라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 후에 그의 아내였던 살로메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남편의 형제이며, 유일하게 생존한 알렉산더 얀네우스(요나단)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고, 그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재혼까지 해서, 알렉산더 얀네우스를 왕으로 세우게 된다. 

이때 유대교는 레위기에 기록된 대제사장의 결혼 규례를 어긴 알렉산드라 살로메와의 결혼은 바리새인들의 반발을 일으키게 된다(레위기 21장 13-14절)

이 일로 인해, 그리스식 전제 군주를 모방한 알렉산더 얀네우스는 바리새파를 배척하고,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두개파를 지지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그리고 B.C 90년경 초막절 행사 때 율법의 규례대로 하지 않자 폭발한 바리새인들이 알렉산더 얀네우스의 대제사장직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발을 일으키자, 많은 수의 바리새파 사람이 포함된 6,000명을 학살했다. 

그리고 그 지역 오바이다 1세에 의해 과거 에돔, 모압, 암몬 족속들이 살던 지역에 나바테인들의 세력이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공격했다가,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패배하게 되자 이때 알렉산더 얀네우스의 바리새파 반대파들이 일제히 일어나 6년간의 내전이 일어나게 된다. 

알렉산더 얀네우스는 내전을 진압한 다음에 포로들을 예루살렘에 데려온 후에 사두개파 지도자들을 위한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여는데, 예루살렘의 왕궁 앞에서 포로로 잡힌 800명의 바리새인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고통스럽게 죽였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알렉산더 얀네우스 왕이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불안 증세로 인해 과도한 음주로 인해 죽게 되면서 자신의 왕위를 아내인 알렉산드라 살로메에게 넘기게 되는데, 죽기 전에 자신의 아내에게 유언한 것이 바리새파와 잘 지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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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 주전 B.C 76년에 하스몬 혈통이었던 살로메 알렉산드라 여왕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바리새인들이 정치에 다시 등용되기 시작하고, 반대로 사두개인들은 권력으로부터 추방되는 시대를 맞게 된다. 

그 후 알렉산드라의 두 아들이 권력을 놓고,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내분이 일어날 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두 아들 사이에 붙으면서 권력을 잡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주전 B.C 63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을 끌어드려 유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주후 A.D 예루살렘 성정이 로마에 의해 파괴된 후에,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흩어져 회당의 정신적 기초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대중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아, 랍비 유대교의 정통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예수님 시대에 나타난 대표적인 바리새파는 두 개의 학파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학파는 이방인과 접촉을 전혀 하지 않는 모세 오경의 율법에 대한 아주 엄격한 해석과 로마 정부로부터의 대항을 주장하는 삼마이 학파이다. 

두 번째 학파는 개방적, 진취적, 대중적인 진보적인 학파로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힐렐 학파이다. 사도 바울 역시 할렐 학파에 속한 교사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바리새인의 정통 교육을 받았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힐렐 학파의 견해가 온 유대교를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의해 비판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23장 2절에서 기록되기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 또는 회칠한 무덤,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구원에 이르는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 자들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독사의 자식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바리새인들의 교리는?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교리를 살펴보자. 

1. 구약 성경을 정경으로 인정했다. 
정경이라는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기 위해 주신 책들의 모음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오류가 없는 책으로 인정한 책을 말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의 성경이 되었다. 

또한 정경 외에도 외전 또는 외경(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숨겨진 책)이라고 불리는 헬라어로 기록한 구약 성경 70인 역에는 포함되지만, 정경이라는 인정하는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책들도 있다. 

정통 기독교 개신교와 유대교에서는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들로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며, 저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이유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선지자가 대언하던 시대)가 끝난 이후에 쓰인 책들이라는 이유에서 이다. 하지만, 천주교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에서는 외경을 사용하고 있다. 

2. 철저한 율법 연구와 도덕적 종교적 관습 준수
바리새인들은 금식이나 레위기의 정결 예식을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것으로 여김으로 아주 엄격하게 지켰다. 이러한 율법을 어기는 행위를 할 때에 왕에게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비판의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자신들이 목숨같이 지기는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 때 옷을 찢어 그들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와 동시에 바리새인들은 조상들의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장로들의 전통인 구전 율법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하는 것, 안식일에는 일을 하는 행위를 하면 안 되는 것, 안식일에는 병든 자를 고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시에, 조상들로 부터 내려온 비 진리의 전통인 조상들의 계명들을 진리인 것처럼 지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셨다. 이 구전 율법이 " 미쉬나 " 가 되었고, 나중에 " 탈무드 "에 편입되었다. 

이것과 관련해 한 가지 묻고 싶다. 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여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에수님의 행동이 자주 율법과 대대로 장로들을 통해 내려온 전통을 깨뜨리는 행동을 함으로 인해, 자신들의 신앙이 흔들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사람들이 따른다는 것이었다. 바리새파의 영향력은 대중들로부터 나오는데, 예수가 자신의 대중들을 끌고 가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자신들이 예수님의 세력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죽이기로 결의한 것이었다. 

3. 역사가 하나님의 의해 통제되고,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믿었다. 

4. 죽은 사람의 부활과 심판을 믿었으며, 천사와 영들의 존재를 인정했다. 

5. 자신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로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참되고 경건한 이스라엘인이라고 여겼다. 이 사상으로 인해, 선민사상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국가와 이방 사람을 향해 지옥의 땔감으로 여기게 되었다. 

6. 장차 다윗의 후손인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오셔서, 다윗 왕국의 영광이 재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셨을 때에, 군중들이 예수님을 데려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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