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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스토리

미트라교가 천주교 가톨릭의 발전에 미친 영향

by khuiharley 2023. 3. 10.

천주교와 서기 1세기부터 4세기까지 로마 제국에서 유행했던 태양 숭배 신비 종교인 미트라교 사이의 관계는 수년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과 추측의 대상이 되어 왔다. 두 종교 사이에는 확실히 유사점이 있지만, 두 종교를 구별하는 몇 가지 주요 차이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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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트라교의 기원과 신앙


미트라교는 미트라(Mithras)라는 신을 주된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밀의 종교(Mystery religion) 즉, 신비 종교이다. 기원전 2세기에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종교로 군인과 상인들에 의해 로마 제국으로 옮겨졌고, 로마 군대와 상류층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종교는 지상과 천상의 영역 사이의 중재자로 여겨지는 태양신으로 미트라 신에 대한 숭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미트라(Mithras)는 종종 프리자아 모자(= 자유의 모자, 프랑스혁명 때 자유의 상징인 원뿔꼴 모자)를 쓰고, 단검과 횃불을 들고 황소를 죽이는 청년으로 묘사되었다. 이 이미지는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 또는 악에 대한 선의 개념을 나타낸다. 

그는 태양과 관련이 있었고, 그리스 신 제우스처럼 바위에서 태어난 존재로 여겨졌다. 미트라교는 복잡한 믿음과 관습 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많은 부분이 비밀이었고, 입문자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미트라즘(Mithraism)의 핵심 신념 중 일부는 영혼 불멸, 죽은 자의 심판, 선과 악의 최후의 전투 개념을 포함했다. 미트라즘은 또한 개인의 도덕성과 자기 수양을 강조했기에, 입문자들은 엄격한 행동 규범을 따라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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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가톨릭)와 미트라교의 유사점


천주교와 미트라교 사이에는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입문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두 종교 모두 정화, 봉헌, 서약을 포함하는 정교한 입문 의식을 가지고 있다. 

미트라교에서는 입회자들은 일곱 단계의 입문 단계를 통과해야만 했으며, 각 단계는 행성과 관련이 있고, 고유한 일련의 의식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각 단계에는 고유한 가르침과 관행이 있었고, 수련자들은 다음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 일련의 테스트와 도전을 거쳐야만 했다. 

반면에 천주교 가톨릭에는 또한 구원에 필수적인 세례,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포함한 입교식 제도를 가지고 있다. 

천주교와 미트라교의 또 다른 유사점은 상징주의의 사용이다.

두 종교 모두 추종자들에게 복잡한 신학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상징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미트라교는 미트라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기 위해 황소의 이미지와 황소를 죽이는 것을 사용했다. 

천주교 또한 십자가, 성찬례(= 성찬식), 성례전(= 세례를 받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거룩한 예전)을 포함한 다양한 상징을 사용해 신자들에게 가르침을 전달한다. 

또한 천주교 가톨릭과 미트라교의 또 다른 유사한 의식으로는 12월 25일이다. 

12월 25일은 미트라교에서 태양신의 탄생일과 졸업으로 알려진 미트라교 입회식이 포함되었다. 태양신은 로마를 수호하는 국가 수호하는 신이기 때문에, 이날은 미트라교를 믿는 모든 로마인들에게는 축제의 날이었다.

이날은 기독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성탄절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를 기념하는 축제날로 드려지고 있다. 

또 같은 유사성으로는 중재자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다. 

미트라교에서는 미트라는 태양신으로 천상과 지상의 영역 사이를 이어주는 중재자로 표현하는데, 기독교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 사용하는 개념과 같다. 


 천주교와 미트라교의 차이점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와 미트라교 사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두 종교에서 여성의 역할이다. 

미트라교에서는 여성이 입문하거나 종교의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것은 항상 여성이 교회 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해 온 천주교와는 대조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종교의 또 다른 차이점은 금욕주의와 자기 수양에 대한 태도이다. 

미트라교에서 수도자들은 특정 음식과 관행을 삼가는 것과 관련된 엄격한 행동 규범을 따라야만 했다 하지만, 천주교는 개인의 도덕성과 자기 수양을 강조하지만, 접근 방식이 더 유연하고 다양한 관행과 관습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는 가르침의 공개 범위이다. 

미트라교는 입문자들에게만 가르침을 공개하는 신비 종교인 반면에, 기독교는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오픈되어 있었다. 


 천주교에 대한 미트라교의 영향 가능성


천주교와 미트라교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후자가 전자의 발전의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믿는 일부 학자들이 있다.

1911년 천주교 가톨릭 백과사전에는 크리스마스가 초기 교회의 축제가 아니라, 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자신을 태양신이라고 부르는 니므롯과 자신을 달의 여신이라고 주장하는 세미라미스가 만든 바벨론 종교가 이집트로 넘어가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되었다. 결국 태양신이라고 부르는 미트라는 바벨론 종교의 창시자 니므롯을 말하는 것이다. 

위키 백과사전에는 이 날을 작은 설날로 표현하고 있는데, 동지라는 단어의 뜻은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가진다. 이 동짓날은 일 년 중에 해가 가장 짧은 날로서 어둠을 이기는 태양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날이었다. 

이날은 동지 기간에 기념되는 농신제 - 농가에서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지내는 의식(Saturnalia) 및 테양신 - 페르시아인들의 미트라교 영향을 받아 해를 상승의 태양이라 해 국가신으로 숭배(Sol invictus)와 같은 기존의 이교도 축제와 일치하도록 선택되었다. 

천주교 로마 가톨릭 제265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전 세계가 예수 탄생일로 지키는 크리스마스에는 오류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어느 가톨릭 신부의 고백에 의하면 크리스마스가 이교도들의 전통과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전통과 이교 전통의 혼합이 되어 발전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크리스마스와 연관시키는 많은 관습과 상징은 고대 축하 행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트라교가 기독교의 초기 세기 동안 로마 제국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미트라교의 가르침에 이미 익숙한 잠재적인 개종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미트라교에서 특정 요소를 차용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마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미트라교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종교인 태양신을 섬기던 미트라교와 충돌하게 되었다. 

이때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수많은 이교도들과, 태양신을 섬기는 로마인들 그리고 초대 교회들을 하나가 되게 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왕권강화를 위해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만들고, 교회 안에 이교도들의 예배 형태와 의식을 가져와 도입하게 되었다. 

미트라교가 천주교 가톨릭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한 가지 영역은 종교적 이미지와 도상학을 사용하는 것이다.

미트라교는 기록된 경전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추종자들에게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해 도상학을 사용해 이미지와 상징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는데 특히 황소, 태양, 별과 같은 많은 이미지가 나중에 기독교에서 채택되었다. 

천주교 역시 신실한 사람들이 신과 연결되고, 신앙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데 이미지와 상징들이 사용되었다. 특히 성모 마리아, 성 베드로, 성 바오로(= 바울) 등 성인들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신의 임재를 나타내고, 신자들의 헌신하도록 기운을 북돋기 위해 사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미 미트라교 신앙에 익숙한 잠재적인 개종자들이 그들의 신앙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트라교에서 이 개념을 차용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론


결론적으로 천주교 가톨릭과 미트라교의 관계는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복잡하고 매혹적인 주제인 것은 사실이다. 두 종교 사이에는 확실히 유서점이 있지만, 두 종교를 구별하는 몇 가지 주요 차이점도 있다. 

어떤 이들은 미트라교가 특히 종교적 이미지와 중개자 개념을 사용하는 데 있어 천주교 가톨릭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으며, 여전히 많은 추측과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두 종교 사이에는 분명히 유사점이 있지만, 이러한 유사성은 단순히 그들이 출현한 시간과 장소에 공통된 문화적, 역사적, 용인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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